민사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판결이 내려지기 전, 대한민국 법원으로부터 '화해권고결정'이라는 서류를 송달받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이는 재판부가 사건의 경위와 당사자들의 주장을 검토한 뒤, 소송을 판결로 종결짓기보다는 적절한 합의점을 제시하여 사건을 신속하고 원만하게 해결하도록 권고하는 제도입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이 결정을 받아들여 소송을 끝낼 것인지, 아니면 내용에 불복하여 끝까지 재판을 받을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화해권고결정은 확정되는 순간 판결문과 동일한 강력한 효력을 갖기 때문에 신중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본 가이드에서는 화해권고결정의 기초 개념부터 이의신청 시 유의사항, 그리고 확정 후 발생하는 법적 파급효과까지 8,000자 이상의 상세한 분석을 통해 안내해 드립니다.
1. 화해권고결정이란 무엇인가?
화해권고결정은 민사소송법 제225조에 근거합니다. 법원, 수명법관 또는 수탁법관이 소송계속 중인 사건에 대하여 직권으로 당사자의 이익, 그 밖의 모든 사정을 참작하여 사건의 공평한 해결을 위해 내리는 결정입니다.
제도의 도입 취지
판결은 승패가 명확히 갈리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은 큰 타격을 입게 되고, 이는 상소로 이어져 소송이 장기화되는 원인이 됩니다. 반면 화해권고결정은 당사자 간의 양보를 전제로 상호 수용 가능한 타협점을 제시함으로써 분쟁을 조기에 종식시키고 소송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결정의 내용
결정서에는 청구취지와 다른 내용이 담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고가 1억 원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6천만 원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포기하라"는 식의 권고를 할 수 있으며, 이행 시기나 분할 납부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기도 합니다.
2. 화해권고결정의 송달과 효력 발생 과정
법원이 결정을 내리면 그 정본을 당사자(혹은 소송대리인)에게 송달합니다. 이때부터 운명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2주일의 불변기간
당사자는 화해권고결정 정본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2주일 이내에 이의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 2주라는 기간은 이른바 '불변기간'으로, 천재지변 등 극히 예외적인 사유가 없는 한 절대 연장되지 않습니다. 만약 14일째 되는 날이 주말이나 공휴일이라면 그다음 평일까지 기간이 만료됩니다.
쌍방의 묵인에 의한 확정
원고와 피고 모두가 2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화해권고결정은 그대로 확정됩니다. 또한 이의신청을 했다가 2주가 지나기 전 혹은 확정 전까지 이를 취하하거나, 아예 이의신청권을 포기하겠다는 서면을 제출하면 즉시 확정될 수 있습니다.
중요 체크: 송달일 계산법
송달일은 초입불산입 원칙에 따라 받은 날 다음 날부터 1일로 기산합니다. 예를 들어 1월 1일에 받았다면 1월 15일 자정까지가 이의신청 기한입니다. 전자소송의 경우 이메일이나 문자를 확인하고 '확인' 버튼을 누른 시점이 송달 시점이 됩니다.
3. 이의신청 방법 및 절차
결정 내용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거나, 판결을 통해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리고 싶다면 이의신청을 해야 합니다.
이의신청서 작성법
이의신청은 반드시 서면(이의신청서)으로 제출해야 합니다. 신청서에는 사건번호, 당사자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본인은 귀 원의 화해권고결정에 대하여 불복하므로 이의를 신청합니다"라는 취지를 명확히 밝히면 됩니다. 구체적인 불복 이유를 기재할 필요는 없지만, 향후 재판 진행을 위해 간략히 언급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의신청의 효과
어느 한 쪽이라도 적법하게 이의를 신청하면, 화해권고결정은 그 효력을 상실합니다. 즉, 결정문은 백지화되고 소송은 결정이 내려지기 전의 상태로 복귀합니다. 법원은 다시 변론기일을 지정하고, 당사자들은 다시 법정에 출석하여 공방을 이어가게 됩니다.
전략적 이의신청
상대방이 이의신청을 할 것이 확실시되더라도, 본인도 이의가 있다면 반드시 2주 이내에 신청서를 제출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상대방이 이의신청을 했다가 막판에 취하해버리면 본인의 신청이 없을 경우 결정이 확정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4. 화해권고결정 확정 시의 법적 효력
2주가 지나 결정이 확정되면, 이는 민사소송법 제231조에 의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가집니다. 재판상 화해의 효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판력 (旣判力)
확정된 결정은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어, 당사자는 동일한 사안으로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없습니다. 이를 '기판력'이라 합니다. 만약 동일한 소송을 다시 낸다면 법원은 '중복제소' 또는 '기판력 위반'으로 각하 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집행력 (執行力)
화해권고결정 정본은 그 자체로 집행권원(執行權原)이 됩니다. 즉, 상대방이 결정된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예: 돈을 갚지 않는 경우), 채권자는 별도의 소송 없이 이 결정문으로 상대방의 재산에 압류, 경매 등 강제집행을 할 수 있습니다.
형성력 (形成力)
법률관계의 변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예: 소유권 이전 등), 확정된 결정에 의해 즉시 법률적 권리 상태가 변경되거나 등기 신청의 근거가 됩니다.
5. 화해권고결정의 장점과 단점 비교
결정문을 받았을 때 당사자가 고려해야 할 손익계산서입니다.
| 구분 | 장점 | 단점 |
|---|---|---|
| 시간/비용 | 소송의 조기 종결, 인지대 환급(50% 내외) | 이의신청 시 기일 공전으로 지연 가능성 |
| 결과 수용 | 상호 양보를 통한 원만한 합의 도출 | 어느 한 쪽도 100% 만족하기 어려움 |
| 집행력 | 판결과 동일한 강력한 강제력 확보 | 내용이 모호할 경우 집행 시 분쟁 소지 |
| 소송 기록 | '판결'보다 부드러운 화해 기록으로 남음 | 법적 시시비비를 가리는 명확성은 부족 |
6. 특수한 상황에서의 화해권고결정
실무에서 자주 발생하는 특이 케이스들입니다.
일부 당사자에 대한 결정
피고가 여러 명인 소송에서 법원이 일부 피고에 대해서만 화해권고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해당 피고와 원고 사이의 관계만 정리되고 다른 피고들과의 재판은 계속됩니다.
소송 비용의 부담
보통 화해권고결정에는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한다"는 문구가 들어갑니다. 이는 원고가 지출한 인지대, 송달료, 변호사 보수 등을 피고에게 청구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므로, 비용 지출이 컸던 당사자는 이 부분을 꼼꼼히 따져보고 이의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준재심의 소
확정된 화해권고결정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예: 위조된 서류 기반), 민사소송법 제461조에 따라 준재심(準再審)을 청구할 수 있으나, 그 요건이 매우 엄격하여 실무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7. 결정을 앞둔 당사자를 위한 조언
화해권고결정문을 손에 든 당신이 확인해야 할 최종 체크리스트입니다.
- 금액의 적절성: 증거 관계를 고려했을 때 판결로 가면 더 이익일지 냉정히 판단하세요.
- 실현 가능성: 피고가 "언제까지 주겠다"는 약속을 지킬 능력이 있는지, 담보는 있는지 확인하세요.
- 소송 비용: 각자 부담 원칙이 나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 계산해 보세요.
- 상소 가능성: 이의신청을 해서 이기더라도 상대방이 항소하여 소송이 2~3년 더 길어질 위험을 감수할지 고민하세요.
화해권고결정은 법원이 주는 '마지막 타협의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살려 지루한 법적 공방에서 벗어날 것인지, 아니면 진실 규명을 위해 험난한 판결의 길로 갈 것인지는 오직 당사자의 몫입니다. 법은 감정이 아닌 서면과 기간으로 말한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