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계약을 체결한 이후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물건의 규격을 오해했거나, 부동산의 경계선을 잘못 알았거나, 혹은 상대방이 누구인지 착각하여 계약을 맺는 식입니다. 법률적으로 이러한 상태를 착오(Mistake)라고 부릅니다.
원칙적으로 계약은 지켜져야 합니다(Pacta sunt servanda). 하지만 자신의 의사와 표시가 일치하지 않는 상태에서 맺어진 계약을 무조건 강제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에 우리 민법 제109조는 일정한 요건 하에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오늘 법률 가이드는 계약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 부분의 착오'란 무엇이며, 어떤 경우에 취소가 인정되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1. 민법 제109조: 착오로 인한 의사표시의 기초
계약 취소의 근거가 되는 민법 제109조 제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의사표시는 법률행위의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취소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
조문의 핵심 구조
이 조문은 계약의 신뢰 보호와 개인의 자유 의사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취소를 하려는 사람은 '중요 부분'임을 입증해야 하고, 취소를 막으려는 상대방은 취소하려는 사람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었음을 주장해야 합니다.
중요한 점은 착오에 의한 취소는 처음부터 무효가 아니라, 일단은 유효하게 성립한 계약을 소급적으로 무효화시키는 형성권의 행사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적법한 취소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해야 할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2. '중요 부분의 착오'란 무엇인가?
법원이 어떤 착오를 '중요 부분'으로 인정하느냐가 승소의 핵심입니다. 판례는 이를 판단하기 위해 이중적 기준을 적용합니다.
중요 부분 판단의 2대 요건
- 주관적 요건: 표의자(착오를 일으킨 사람)가 그러한 착오가 없었더라면 그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어야 합니다.
- 객관적 요건: 일반인(보통의 지능과 상식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도 표의자의 처지에 있었다면 그러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경제적·법률적 의미가 커야 합니다.
즉, 본인만 중요하다고 우겨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통념상 누구라도 그 상황이라면 계약을 안 했을 것이라고 인정되어야 합니다. 또한, 판례는 경제적 불이익이 없는 경우에는 중요 부분의 착오로 보지 않는 경향이 강합니다.
3. 착오의 유형과 취소 가능 여부
착오의 종류에 따라 취소 가능성이 크게 달라지므로 본인의 상황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내용의 착오
사용하는 언어나 기호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달러($)'와 '파운드(£)' 단위를 착각하여 가격을 적은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는 전형적인 내용의 착오로 취소가 비교적 용이합니다.
표시상의 착오
머릿속 생각과 손가락이 다르게 움직인 경우입니다. 1,000만 원이라고 쓰려다가 0을 하나 빼먹어 100만 원이라고 적은 경우입니다. 오기(誤記)가 명백하다면 중요 부분으로 인정받기 쉽습니다.
동기의 착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
의사표시를 하게 된 배경에 착오가 있는 경우입니다. 예컨대 "여기에 전철역이 들어설 줄 알고 땅을 샀는데 안 들어온다더라"는 경우입니다.
- 원칙: 동기는 내심의 영역이므로 상대방이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취소할 수 없습니다.
- 예외 1 (표시된 동기): 동기를 상대방에게 표시하여 계약의 내용이 된 경우에는 취소가 가능합니다.
- 예외 2 (유발된 동기): 상대방의 거짓말이나 잘못된 정보 제공으로 인해 동기의 착오가 발생한 경우에는 표시 여부와 상관없이 취소할 수 있습니다.
4. 판례로 보는 '중요 부분' 인정 사례 vs 부정 사례
실제 대법원 판례를 통해 구체적인 기준을 잡아보겠습니다.
중요 부분으로 인정한 사례 (취소 가능)
- 토지의 현황 및 경계에 관한 착오: 농지인 줄 알고 샀는데 절반 이상이 하천 부지인 경우나, 건물을 지으려고 샀는데 대지 면적이 현저히 부족한 경우.
- 목적물의 동일성에 관한 착오: A 물건인 줄 알았는데 B 물건이었던 경우.
- 채무 보증 시 피보증인에 관한 착오: 재산이 많은 갑인 줄 알고 보증을 섰는데 알고 보니 신용불량자 을이었던 경우.
중요 부분이 아니라고 본 사례 (취소 불가)
- 시가(가격)에 관한 착오: 부동산 가격을 시세보다 좀 비싸게 샀거나 싸게 판 경우. 가격은 주관적 판단의 영역이며 계약 체결 당시의 위험 부담으로 봅니다.
- 면적의 미세한 부족: 수천 평의 토지 중 몇 평이 모자라는 정도는 중요 부분으로 보지 않습니다.
- 소유권 귀속에 관한 착오: 타인의 물건을 매매하는 것도 유효하므로, 누구 소유인지는 중요 부분으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5. 취소를 가로막는 벽: '중대한 과실'
중요 부분의 착오이라 하더라도 표의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다면 취소권을 잃게 됩니다.
여기서 '중대한 과실'이란 표의자의 직업, 법률행위의 종류, 목적 등에 비추어 보통 요구되는 주의를 현저히 결여한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을 매수하는 사람이 등기부등본이나 대장을 확인하지 않아 발생한 착오는 중대한 과실로 인정되어 취소가 거부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표의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를 이용한 경우에는 법원은 표의자의 손을 들어주어 취소를 인정합니다.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남의 실수를 악용하는 행위를 방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6. 착오 취소의 효과와 제3자 보호
취소가 적법하게 이루어지면 계약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소급 무효)이 됩니다. 따라서 아직 이행 전이라면 이행할 필요가 없고, 이미 돈을 주고받았다면 부당이득 반환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거래의 안전을 위해 민법은 한 가지 장치를 더 두고 있습니다. 착오로 인한 취소는 선령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합니다. 즉, 내가 착오로 집을 팔았다가 취소했는데, 그 사이에 매수인이 이 사정을 모르는 제3자에게 집을 다시 팔아버렸다면, 나는 그 제3자로부터 집을 찾아올 수 없습니다. 이 경우 매수인에게 금전적 배상을 청구하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7. 실무 대응 핵심 요약 (Checklist)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깨고 싶을 때 반드시 체크해야 할 사항들입니다.
- 착오의 특정: 내가 무엇을 어떻게 착각했는지 명확히 정의하십시오.
- 경제적 이익 상실 입증: 이 착오로 인해 내가 입게 된 구체적인 금전적 손실을 계산하십시오.
- 동기의 표시 여부: 만약 동기의 착오라면, 계약 당시 상대방에게 그 이유를 말했거나 문자로 남겼는지 확인하십시오.
- 주의의무 이행 입증: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확인(서류 검토 등)을 다했다는 증거를 확보하여 '중대한 과실' 프레임에서 벗어나십시오.
- 제척기간 확인: 취소권은 추인할 수 있는 날로부터 3년, 법률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내에 행사해야 합니다.
계약의 신중함과 법적 구제의 조화
법은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계약을 체결할 때는 모든 조건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인지 능력에는 한계가 있고, 예기치 못한 착오는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중요 부분의 착오'에 의한 취소 제도는 바로 그러한 인간적 한계를 법이 포용하는 지점입니다. 만약 본인이 중대한 착오 속에 계약의 굴레에 묶여 고통받고 있다면, 그것이 법이 정한 '중요 부분'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본인에게 '중대한 과실'은 없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 보시기 바랍니다. Law-Post는 여러분이 부당한 계약으로부터 벗어나 정당한 권리를 회복할 수 있도록 올바른 법적 길잡이가 되어 드리겠습니다.